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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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라이트 메렌 R1 업데이트 기념 토막글
에 카렌워켄도 첨가.
메렌은 머리를 길러야 예뻐요!
※본 글은 언라이트 내의 설정을 완전히 따온 패러디가 아닌 필자의 주관과 생각으로 일부를 개조한 파스티쉬입니다. 원작의 설정과는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스포일러가 포함 될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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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표정이 굳은 남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메렌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기억 속, 머리 위로 쏟아져 오던 백열전구의 열기가 온 몸을 찔러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알지 못 했다. 그의 화려한 손놀림도, 웃음도,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기계적 산물이라는 것을. 서커스용 비둘기는 관객들의 머리 위를 화려하게 비행했다. 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지만 메렌의 입에서, 나사못 만큼이나 단단한 미소가 변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은 그렇게 훈련받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프로그램에 의해 돌아가듯이.
오토마타는 생명인가.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도 같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채 방황했던 시절 어떤 사람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신의 외모에 혹해서 말을 걸어오는 어느 집 규슈도 아니었고, 그저 관객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은 밤바다의 수평선처럼 모호한 경계선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기계의 몸으로 삶을 찾는다면 기계는 생명인가. 그렇다면 생명의 정의는 무엇인가. 생명이라는 언어 자체가 하등 허무한 우월감이나 느끼기 위한 인간의 강제적 선택이라면 오토마타 역시 하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억눌린 삶일 뿐이다.
그는 기계를 사랑했다. 그의 표정이나 입에서 나오는 단어, 손짓 하나하나에도 그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메렌은 인간을 부러워 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원하는 대로 방향을 잡고 만들어 갈 수 있는 내면의 자유를 욕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스스로 느꼈다.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고. 사람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인형이 아닌 그 자신, 메렌으로서의 삶을 찾고 싶었다. 도박의 마지막 순간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터지는 그런 짜릿함 처럼 어딘가에 자신이 원하던 불투명한 행복이 있을거라고 그는 남몰래 생각했다.
당신은 여기에 있으면 안 됩니다.
자신이 망가지던 날. 선혈의 붉은 색이 부정당하던 그 날. 꿈 속의 야경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탄식하면서 말했던 그 한마디. 돌고 돌아 소용돌이치는 가을의 낙엽처럼 바삭한 상처가 그 때 그 순간 새겨졌다. 그래서 메렌은 떠돌았다. 브라우의 만류에도, 동료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커스단을 나서기로 했다. 오토마타라고 욕을 듣는 것 보다는 낫잖습니까. 조금 더 버텨 볼 생각 없냐는 단장의 말에 메렌은 푸념섞인 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그 때 그 순간은 푸념이 아닌 자조라고 해도 좋았다.
날씨가 부쩍 더워지고 있었다. 아직 그렇게 쨍쨍하지는 않은 해였지만 갓 태어난 어린 햇님도 충분히 불쾌함을 선사할 수 있었다. 몰라서 저질렀기 때문에 더 지독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순수함의 불쾌함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잘랐다. 메렌은 눈을 조금 덮었던 덥수룩한 머리가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다는 느낌이 받았다.
"뭐, 훨씬 깔끔하고 보기 좋네."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연미복의 남자가 메렌의 머리를 털어주며 말했다. 그의 손 안에 쥐어져있던 은빛 날이 번쩍대던 가위가 떨어진다. 달그락거리는 가벼운 소리임에도 그 투명해 보일정도로 깔끔한 날은 눈 앞의 거울과 부딪히는듯한 소리라는 착각을 만들었다. 거울 안에는 또 다른 자신이 있었다. 거울속의 메렌이 카드마술사 메렌이 아닌 그냥 그 자체의 메렌인가. 아니면 자신도 하나의 반사된 빛에 불과한가.
"당신 표정이 안 좋아. 모처럼 머리도 예쁘게 잘랐는데 좀 웃는게 어때?"
"예쁜가요?"
"이것 참. 난 보기보다 눈이 높은 남자라고. 아무한테나 예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단 말이야."
"……."
"뭐야 그 못 믿겠다는 눈빛은? 닥터라도 불러서 인증 해 줘? 누구든지 다 예쁘다고 할 거야. 그건 그렇고 그 표정 좀 어떻게 해 봐. 세상의 불운이란 불운은 다 떠 안은 것처럼 그게 뭐야? 닥터도 자신이 오토마타라는걸 알았을때도 그런 반응은 아니었어. 살아있는 놈이라는게 말이야, 어떻게든 어려운 일을 헤쳐나가 보려고 발버둥을 쳐야 죽을때 제 맛이 나지. 너처럼 '이제 모든건 다 끝났어.' 라는 생각만 줄창 해대면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그대로 죽는거라고."
그렇게 말한 남자는 한 번 피식 웃었다.
"카렌베르크."
"응?"
"당신은 제가 생명으로 보입니까?"
"그럼?"
메렌은 더 이상 질문하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그는 인간과는 다른 윤리사상을 지닌 존재였다. 아주 잠깐동안 본 하늘과 며칠동안 관찰한 하늘이 다른 것 처럼 그 누구에게도 시각차이는 있을터지만 그의 기준이 일반적인 인간과 같다는 건 메렌이 생각하기에도 상당히 무리수인 판단이었던 것이다.
"생명이 아니라고 치자. 그럼 오토마타인 닥터를 좋아하는 나는 생명도 아닌 물체를 사랑하는 변태가 되는건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누는게 어디있습니까."
"그래, 내 말은 극단적이었지. 하지만 그렇게 대답을 하도록 유도한건 너잖아. 네 말을 들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비하가 진하게 섞여있어. 살아있지 않아? 살아있다는게 뭔데? 맥박이 뛰는 따뜻한 몸을 가진 생명? 그렇다면 그 생명은 어디서 나오지? 너 역시 심장이라 불릴 수 있는 CPU를 가지고 있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통해 움직이는거라면 피를 통해 움직이는 생명들과는 뭐가 다르지? 차이점이 있는거야?"
"그만 하고 싶습니다. 거기까지는 너무 어려워요."
"그래. 나도 철학따위는 질색이라서 그만 두련다.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닥터와 하는게 나을거야. 난 고작해봤자 네 의견을 빈정거리며 토다는 역할만 할테니까. 나는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잘래. 너도 일찍 자라."
"의외네요. 워켄 박사님을 마중나갈 줄 알았는데?"
"닥터는 오늘 안 돌아 온다고 했었어. 생각이 많으면 이따금씩 혼자있고 싶어하잖아. 이해는 안 가지만 가만히 안 내버려두면 망가지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고 닥터 역시 그래서 내가 해 줄수 있는 최선의 존중일 뿐이야."
카렌베르크는 그 말을 끝으로 나가버렸다. 존중이라니. 그는 기본적으로 남보다는 자신을 우선시 하는 불친절한 종족인 악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존중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정말 세상 별종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고 메렌은 생각했다.
그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자신은 누구인가. 인간이든 오토마타든, 존재한다면 어깨에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메렌은 그 것을 깨닫지 못 했다. 스스로가 느끼지 못 하는 차이가 어느새인가 안에 자리잡아서 사람들과의 벽을 만든다면 그는 자신을 살아있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은 것도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 죽었다면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시체더미일 뿐이고 사람 역시도 언젠가 그 파편으로 돌아가는 부속품일 뿐 의미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워켄 박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지…… 자신이 오토마타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왜 주저하는 모습 없이……."
메렌의 혼잣말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아무도 듣지 않는 나뒹구는 소음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메렌 자기 자신처럼. 생명이 없지만 죽은 것도 아닌 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질 터였다. 문득 메렌은 루드가 보고싶어졌다. 서커스단 내에서 자신이 오토마타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유달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남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는 곧 자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별인사도 없이 물이 흘러가듯 빠져나간 자신의 자리를 보고 그는 무엇을 생각할까. 자신의 몸은 기계라는 것을 밝혔을때도 무덤덤히 바라보던 그가 생각났다. 아니, 메렌은 기억해보려 애썼다. 그때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에 어린 혼란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한이었나 경멸이었나. 그러다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기억 속에도 남지 않은 관객들처럼 그렇게 사라져야 할 사람이었다. 메렌은 묻어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맨 처음 자신의 마술을 보고 신기해 하던 첫 손님도 잊어버린 자신의 기억이 그도 그렇게 쉽게 잊어줄지는 의문이었다.
옆에 있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스프링이 거부하듯이 그의 몸을 튕겨낸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느낄 기력도 없었다. 쉬고싶었다. 오토마타라도 이미 익숙해진 생각은 무의식중에 메렌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잠결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늘 하듯이 옆에 있던 루드를 깨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던 메렌은 곧 자신이 서커스단을 떠나왔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우당탕 하고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그의 눈꺼풀 위로 졸음이 쏟아졌다. 마을의 여관이라면 술취한 객이 난동부리는 일쯤은 일상 다반사일터다. 밤에도 낮에도 공연으로 시끄러웠던 그가 몸담았던 날들은 너무나 익숙하게 메렌을 다시 일시적인 죽음 속으로 몰아넣었다.
메렌은 눈을 뜨자마자 낮선 천장과 마주했다. 창가에 새 몇마리가 앉아서 모이가 있는지 방 안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방 안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오토마타와 썰렁할 정도로 간결한 가구들밖에 없었다. 새들은 실망했는지 곧 포르르 날아가버린다. 메렌은 새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이 서커스 단에서 다루던 화려한 깃털의 새들을 상기시켰다.
자신에게는 이제 자유가 있었다. 단장에게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반 영구적인 자유지만 지난 밤 그는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건 잠시 미뤄두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쌓을 생각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방랑자들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자신과 같은 고민으로, 혹은 다른 고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서 열쇠를 찾고 싶었다. 그 열쇠가 무엇인지는 메렌도 몰랐다. 단순한 해답으로 정의하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복잡한 존재였고 논리에서 벗어났으며 모른체 할 수도 없었다.
가슴 속 단단한 응어리는 아마 풀리지 않을 것이었다. 답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무언가를 되찾기 위해서. 하다 못 해 표정이라도, 더 나아가 의미는 있지만 정의는 없는 자신에 대해서 식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문이 열린다. 경쾌하게 나무문을 두드린 자는 다름아닌 카렌베르크였다. 저녁부터 잠을 청하겠다고 한 사람치고는 무척 피곤한 몰골이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항상 변함이 없었다. 웃는 얼굴. 그런데 어쩐지 느낌이 좀 다르다. 그의 표정은 시원했다. 평소 메렌이 느끼던 서늘함과는 많이 다른 부류의 것이었다.
"잘 잤나, 마술사씨?"
"예. 푹 잤습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댄다. 얼른 들어가서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 해. 어젯밤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 이렇게 쭈뼛거리면 어떻게 해?"
카렌베르크의 말은 다른 사람을 향해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향한 말이 누구를 데려올지 궁금해진 메렌이 침대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자를 보는 순간 메렌은 아주 작은 탄성이라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루드?"
"어제 깽판도 그런 깽판이 없었다. 내가 1층으로 내려가보지만 않았어도 어떤 꼴이 났을지 원. 여하간 속을 박박 긁는 부류라니까 둘다. 난 이만 나간다. 둘이 얘기 좀 잘 풀어봐."
그가 나가고 나자 방 안에는 루드와 메렌 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메렌은 루드의 표정을 살폈다. 루드는 늘 한결같았다. 서커스 단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입가에는 미미한 웃음을 달고 눈으로도 감정이 새어나가지 않게 최소한의 행동만 했다. 그래서 메렌은 더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그 둘의 관계는 단순히 동료가 아닌 친구 사이라고 하더라도 메꿀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여긴 어떻게……."
"하루 범위 내의 마을을 다 뒤졌습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찾았어요. 그 것도 저 악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못 찾았겠지만."
"단장이 절 데려오라던가요?"
"아니요."
예상 외의 대답에 메렌이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여기로 왔습니다."
루드가 웃었다. 그건 메렌이 그를 알고 난 이후로 처음 본 웃음이었다.
세상은 99%가 빈공간인 물질로 만들어져있고 따라서 세상의 99%는 빈공간이다. 그 빈공간에 의미를 두고 1%를 찾으려 했던 메렌은 루드를 따라서 웃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이었다. 벽 없이 문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면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안과 밖이 나뉘듯이 메렌의 생각도 반으로 모호하면서도 확실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그가 필요로 했던건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질문이 아닌 누군지도 모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존재였다.
당신이 가는 곳으로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자, 이제 도망자가 둘이네요.
흘리듯 내려간 루드의 말에 메렌도 따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내밀어진 루드의 손을 잡는다.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 메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짐을 짊어지고 있었을 워켄의 태연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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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